은행은 어떻게 돈을 만들어낼까?
은행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접하는 금융기관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은행에 예금을 맡기고, 대출을 받으며, 카드로 결제하거나 자동이체를 이용한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은행은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을 조달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대출을 해줄 수 있는 걸까요?
실제로 모든 은행이 고객이 맡긴 돈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면, 은행은 어떻게 돈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우리가 직접 화폐를 인쇄하는 건 중앙은행이 하는 일이지만, 은행 역시 신용 창조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새로운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반인이 평소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은행이 돈을 만들어내는 구조와 그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1. 은행은 단순한 금고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은행을 ‘돈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누군가가 돈을 맡기면, 은행은 그것을 안전하게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돌려주는 곳으로 여겨지지요.
하지만 은행은 단순히 돈을 맡아두는 금고 같은 장소가 아닙니다. 은행의 가장 큰 역할은 자금을 운용하는 것입니다. 즉, 한쪽에서는 자금을 맡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자금을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은행은 예금된 돈만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창출'해서 대출로 내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2. 신용 창조란 무엇인가?
은행이 돈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용 창조(Credit Creation)**라는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신용 창조는 말 그대로, 은행이 자금을 대출해주는 과정에서 새로운 돈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뜻합니다.
간단한 예로 설명해보겠습니다.
A씨가 은행에 1,000만 원을 예금했습니다. 이 돈은 은행에 입금되어 고객 계좌에 기록됩니다. 하지만 은행은 이 1,000만 원을 금고에 보관해두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B씨에게 대출해줍니다. 예를 들어 지급준비율이 10%라면, 은행은 1,000만 원 중 100만 원만 준비금으로 남기고, 나머지 900만 원은 대출에 사용합니다.
이때 B씨가 대출받은 900만 원은 다시 다른 사람의 예금으로 들어가게 되고, 또 그 예금의 일부가 다른 사람에게 대출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처음 1,000만 원의 예금이 수천만 원 규모의 ‘새로운 예금과 대출’로 증식되게 되는 것이지요.
즉, 실제로 존재하는 현금보다 더 많은 양의 돈이 금융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고 유통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은행의 ‘신용 창조’ 기능이며, 은행이 돈을 만들어내는 핵심 원리입니다.
3. 지급준비율의 역할
앞서 예로 든 지급준비율은, 중앙은행이 은행에게 요구하는 의무 예치 비율을 말합니다. 이 제도는 고객이 갑자기 예금을 인출하더라도, 은행이 대응할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보유하게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예를 들어, 지급준비율이 10%인 상황에서는 은행이 예금 1억 원을 받을 경우, 1천만 원은 준비금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9천만 원을 대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수많은 예금과 대출이 반복되며, 실제보다 더 많은 돈이 금융시장에서 돌아다니는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은행은 예금으로만 존재하던 돈을 넘어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유동성을 공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은행이 돈을 만들어내는 이유
은행은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금융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경제 전체의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이는 결국 국가 경제 성장과도 직결됩니다.
기업이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가계가 주택을 구매하고, 학생이 학자금 대출을 받는 등, 모두가 은행의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고, 이것이 은행의 신용 창조 능력 덕분에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중앙은행이 직접 화폐를 찍어내지 않더라도, 은행이 신용을 기반으로 돈을 만들어내면서 경제 전반의 자금 흐름을 활성화시키는 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5. 과도한 신용 창출의 위험성
신용 창조 기능은 매우 강력하지만, 무제한으로 이루어질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은행이 지나치게 많은 대출을 해버리면, 시중에 돈이 과잉 공급되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무분별한 대출은 상환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까지 자금을 빌려주는 결과를 낳아, 부실 채권 증가 →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 → 금융위기로 이어질 위험이 생깁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은 과도한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금융시장이 붕괴되었고, 그 여파가 세계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은행의 신용 창조 기능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되는 것입니다.
6. 중앙은행의 통제와 조절
이런 이유로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조정, 지급준비율 설정, 대출 규제, 유동성 조절 정책 등을 통해 은행의 돈 창출 활동을 일정 수준에서 통제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과열되면 금리를 올려 대출을 억제하고, 반대로 경기가 침체되면 금리를 낮춰 대출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경제 전체의 균형을 조율합니다.
은행은 독자적으로 돈을 만들 수는 없고, 중앙은행이라는 상위 기관의 틀 안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자금을 운용하게 됩니다. 결국 은행과 중앙은행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협력하면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유동성을 조절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무리하며
은행이 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 안에 존재하는 ‘신뢰’를 기반으로 새로운 신용을 창출하고, 자금 순환을 활성화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입니다.
은행의 신용 창조 기능 덕분에 기업은 투자를 하고, 가계는 소비를 하며, 국가는 세수를 늘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강력한 기능이 과도하거나 통제가 되지 않으면, 금융위기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늘 균형 잡힌 관리와 감독이 필요합니다.
돈은 단지 화폐만이 아닙니다. 그 돈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어떻게 흘러가게 하느냐가 금융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은행은 그런 흐름의 중심에서, 경제의 심장처럼 자금을 순환시키는 중요한 기관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